연기를 예상하면 따분해 집니다.
반면에 예상치 못한 연기는 생명력을 불어넣고, 관객의 흥미를 자아냅니다.
우리는 배우의 압도적인 연기를 보면, 그 배우가 모든 걸 계산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의도된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놀래킨 것입니다.
그때, 계산적인 연기로 따라가기 힘든 역동감이 만들어집니다.
호아킨 피닉스의 즉흥 연기
일례로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가 있습니다. 영화에서 아서 플랙은 지하철에서 남자 3명을 총으로 살해한 뒤, 화장실 안으로 숨어듭니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기괴한 춤사위를 선보입니다.
인터뷰에 따르면 이는 계획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저 호아킨 피닉스가 내면의 충동에 이끌려 춤을 춘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기이하고 몽환적인 춤은 조커라는 캐릭터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첫 번째 살인 후 아서 플랙의 억눌린 자아가 해방되어, 조커의 세계로 발돋움 한순간을 기념하는 듯 보였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장면으로, 호아킨 피닉스가 냉장고 안의 모든 걸 빼내고, 자신이 그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 장면(풀 샷)이 있습니다.
이 역시 즉흥이었으며, 감독과 스태프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카메라가 살짝 흔들리는 것도 포착됩니다.
호아킨 피닉스가 천재적인 감각을 타고났기 때문일까요?
그보다는, ‘충동과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겁니다.
그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에 따르면, 매 순간 ‘즉흥과 충동’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그의 접근법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수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방식으로 훈련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커의 즉흥적이고 본능적인 모습들은, 수십 년의 훈련에 대한 결과물입니다.
우리 모두는 천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동심, 내면의 목소리, 충동 등으로 불립니다. 흥미로운 건, 호아킨 피닉스도 공식 석상마다 철없는 애처럼 행동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그의 원천일까요?
그리고 내면의 천재성은 미리 정해놓은 연기가 아니라, 자신을 깜짝 놀래킬 때 발동되기 쉽습니다.
<해결책 2가지>
1. 예약된 연기를 기피해라
예약된 연기란, 내가 어떻게 연기할지 미리 정해 놓는 걸 말합니다. 모든 걸 철저하게 계산하고, 그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걸 말합니다. 이는 배우를 가장 따분하게 만드는 주범입니다.
물론 장점도 있습니다. 비교적 안정적이고, 배우 스스로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습니다. 또, 관객을 끄덕거리게는 만들 수 있습니다. 설득 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객을 진정으로 매료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들의 영혼에 울림을 주거나 충격을 주진 못합니다.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배우의 천재성이 발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저는 계산적인 연기를 선호했습니다. 어떻게 대사를 뱉을지 뉘앙스를 정하고, 심지어 상대 배우에게 어떻게 반응할지까지 정하고 연기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머리가 명석하지 않은 탓인지, 작위적이고 뻣뻣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산과 의도를 던져버리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잠자고 있던 표현들이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배우인 저도 자유로웠고, 관객도 즐거워했습니다.
이런 ‘예약된 연기’ 문화는 연극영화과 입시에서 영향을 받은 듯합니다. 입시 연기는 예약된 연기의 끝판왕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걸 의도하고, 계산하고, 이를 기계처럼 반복하니까요.
그렇게 한국의 젊은 배우들은 인위적인 방식에 익숙해집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이들의 다음 관문은 ‘입시 연기를 빼는 것’이 됩니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물론, 철저한 계산을 통해 좋은 연기를 펼치는 배우도 있습니다. 이들은 매우 안정적이고 차분하게 연기를 해나갑니다. 그렇게 관객은 설득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느냐에 따라 방법이 바뀝니다. 안정감을 느끼며 차근차근 관객을 설득해나가고 싶다면, 계산을 통해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 방법이 맞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과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하고 싶다면, 위험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내면의 목소리에 충동적으로 반응할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2. 미리 예상하지 마라
예약된 연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예상하지 않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예상하는 습관이 뿌리박혀 있을 겁니다.
이 습관을 조금씩 제거해나가야 합니다. 좋은 방법은, 그저 단순하게 대사와 순간에만 반응하는 것입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조명을 받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조명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앞으로 뭐가 나올지 모르고, 이전에 내가 어떻게 했는지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에 느껴지는 걸 ‘검열 없이‘ 끄집어내는 겁니다.
머리를 비우고, 충동에 충실하게 반응하는 겁니다. 무작위로 뱉어내는 대사와 행동에 당황스러워야만 합니다. 스스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좋은 신호입니다.
주어진 대사가 “너 한 번만 더 내 지갑에 손 대면 죽여버린다”라고 해봅시다.
공격적으로 쏘아붙이듯 다가가며 대사를 치는 게 상식적으로 맞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 대신, 그 자리에 그냥 멈춰 서보는 겁니다. 아니, 그냥 털썩 앉아버릴 수도 있겠네요. 이렇게 스스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선택을 해보세요.
만약 저라면, 앞으로 가려다가 그냥 자리에 털썩 앉아서 씨익 미소를 지으며 혼자 웅얼거리듯 대사를 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다음 대사에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고함을 치며 위협을 가했을 수도 있죠.
이것은 잠재의식에 접근하는 연기법입니다. 우리의 잠재의식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깊이 있고 정확합니다.
그렇기에 언뜻 보면 논리적이지 않을 수 있어도, 역할의 복합적이고 깊이 있는 표현을 만들어 내곤 합니다.
이 모든 건 자신을 신뢰함으로써 가능합니다. 내면의 예술가를 신뢰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충동을 신뢰한다면, 결과는 눈부실 겁니다.
편안함에 안주하면, 돌아오는 건 미미합니다. 위험을 감수하면, 돌아오는 게 더욱 큽니다.
물론, 항상 옳은 선택이 될 순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니까요. 그러니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