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 박살내기

연기를 망쳐버린다.

“그냥 즐겨. 재밌게 해.
못해도 돼. 망쳐도 돼.
그냥 나 자신을 믿어주자.”

연기 전 속삭이는 저만의 주문입니다. 희한하게도, 그래야 결과에 만족할 수 있었거든요.

반대로 “실수하지 마. 잘해야 돼.”라고 생각할 때는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연기하지 않는 연기’는 결과에 신경 꺼야 나온다는 걸 당시에는 꿈에도 몰랐거든요.

시간이 흘러 깨닫게 되었습니다. 눈부신 연기는 결과에 대한 강박을 씹어버릴 때 탄생한다는 걸요.

“너무 진지해.”

“목석같아.”

“연기에 힘 좀 빼.”

과거에 지겹도록 들었던 코멘트입니다.

진지함을 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진지하게 임하게 되더라고요.

당시 제 편견으로는, 연기는 진중해야 하고, 무게감이 있어야 하며,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만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믿었거든요.

하지만 ‘노력’할수록 점점 더 목각 인형이 되어갔습니다. 진지하게 임할수록, 연기를 즐기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렇게 수년 간, 영문도 모른 채 발연기를 지속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연기를 ‘열심히’해야 한다는 편견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치열하게 사는 게 정답이었습니다. 그걸 보고 자란 저로서는 그 방법밖에 떠올릴 수 없었죠. 이런 태도가 연기에 쥐약인 걸 몰랐습니다.

연기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스스로를 고문하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우선, 잘해야 한다는 욕심부터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전설적인 연기 코치 헤럴드 거스킨도 강조했듯, 연기를 ‘단순한 놀이’로 접근하기 시작했죠.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당연합니다. 수년간 고집해온 습관을 바꾸긴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연기의 본질은 ‘놀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정진했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느덧 강박관념을 내려놓게 되었고, 연기하는 순간을 좀 더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실전이 다가오면 잘하고 싶은 욕심이 올라옵니다. 그럼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죠.

“그냥 즐겨. 재밌게 해. 못해도 돼. 망쳐도 돼. 그냥 나 자신을 믿어주자.”

이 주문은 저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수월하게 연기하려면

“수월함은 연기를 해방시킨다.”

-헤럴드 거스킨

아일랜드 배우 앤드류 스콧(Andrew Scott)은 독창적이고 감각적인 연기로 극찬을 받습니다. 그는 그 비결을 한 인터뷰에서 밝혔죠.

“연기는 쉽게 해야 해요. 어렵다면 그건 놀이가 아니니까요.”

연기를 어렵게 생각하면 더 어려워집니다. 열심히 할수록 힘이 들어갑니다. 감정을 쥐어짤수록, 감정이 없다는 사실이 까발려집니다.

전설적인 연기 교육자 샌포드 마이즈너도 말했듯이,

“감정을 드러낼수록, 감정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날 뿐이다.”

무겁고 진지한 연기는, 관객의 마음도 무겁고 진지하게 만듭니다. 자아도취된 배우는 이걸 예술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노동일뿐이죠.

“그럼 어떻게 하면 수월하게 연기할까요?”

먼저, 완벽주의를 내려놓으세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세요.

망쳐도 됩니다. 못해도 됩니다. 대충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연기하지 않는 연기’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연기는 잘하려고 할 때 망치게 됩니다.

반대로, 작정하고 망치려고 할 때 눈부신 연기가 나오게 됩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우린 이걸 ‘예술’이라고 부릅니다.

누군가에게 내 연기를 증명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건 관객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내 연기력만 갉아먹는 공허한 마음가짐일 뿐입니다.

대신, 스스로를 만족시키세요. 내가 재밌어야 합니다. 내가 자유를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관객도 재밌습니다.

연기는 쉽게 할수록 더 쉬워집니다. 즐길수록 신체와 정서가 해방됩니다.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집착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감정이 터져 나옵니다.

게으른 배우는 열심히 하는 배우를 이기지 못하고, 열심히 하는 배우는 즐기는 배우를 이기지 못합니다. 이건 불변의 진리입니다.

태풍이 오면 단단한 나무는 부러지지만, 유연한 나무는 태풍과 함께 춤을 춥니다.

그러니, 유연한 나무가 되세요. 유연함이야말로 진정한 힘입니다. 그리고 유연함은, 단순히 연기를 즐기겠다는 활기찬 마음가짐에서 나옵니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실수하고 망가지는 걸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결과’에 집착합니다. 이는 지나치게 강경하고 뻣뻣한 태도로, 부러지기 쉽습니다.

이제 이것들과 작별해야 합니다. 연기하기 전,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이 말하세요.

“즐기자. 실수하자. 망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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