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연기하지 마세요
뉴욕에서 연기를 공부하던 시절, 사람들이 한국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해 구글에 검색해 본 적이 있습니다.
‘Korean characteristics (한국인 특징)’
그러자 이런 내용이 나왔습니다.
“근면하고 성실하며, 열심히 하는 것에 가치를 둠.”
실제로 한국 사람들은 유독 ‘열심히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문제는 연기마저 너무 열심히, 너무 어렵게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연기를 준비할 때는 열심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연기가 시작되는 순간 대충 해야 합니다.
네, 생각보다 훨씬 더 대충 해도 됩니다.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대충 놀아야 합니다.
연기는 예술입니다. 수학 문제처럼 열심히 노력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닙니다.
나를 가둔 잘못된 성실함
저 같은 경우, 과거에는 연기가 너무 진지하고 딱딱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너무 진지해.”라는 말을 지긋지긋하게 들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열심히’ 해야 한다는 편견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는 열심히 치열하게 사는 게 정답이었기에, 그걸 보고 자란 저로서는 그 방법밖에 생각해낼 수 없었던 듯합니다.
연기를 잘하려는, 또 열심히 하려는 태도가 연기에 쥐약이라는 걸 몰랐죠.
그래서 의도적으로 연기를 가볍게, 재밌게, 즐기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쉽지 않더라고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수년간 반복해온 습관이 바로 바뀌진 않으니까요.
수월함은 연기를 해방시킨다
할리우드 연기파 배우로 각광받는 앤드류 스콧(Andrew Scott)은 한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연기는 쉽게 해야 해요. 어렵다면 그건 놀이가 아니니까요.”
무겁고 진지한 연기는, 관객의 마음도 무겁고 진지하게 만듭니다. 무겁고 진지한 배우의 연기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은 거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수월하게 연기할 수 있을까요?
부담감을 내려놓으세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을 던져버리세요. 완벽주의를 버리세요. 적극적으로 망쳐보세요. 누군가에게 내 연기를 증명하려고 연기하지 마세요.
스스로를 만족시키세요. 내가 재밌어야 합니다. 내가 자유를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관객도 재밌습니다. 관객은 쓸데없이 진지한 배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수월감은 연기를 해방시킨다.”
-헤럴드 거스킨
스스로가 만들어낸 감옥에서 탈출하세요. 어긋난 신념을 던져버리세요. 연기를 의도적으로 망쳐보세요. 그럼 재미가 생겨납니다.
게으른 배우는 열심히 하는 배우를 이기지 못하고, 열심히 하는 배우는 즐기는 배우를 이기지 못합니다.
연기는 열심히 할수록 점점 어려워집니다. 잘하려고 할수록 불필요한 힘이 들어갑니다. 감정을 쥐어짜낼수록 감정이 없다는 사실이 까발려집니다.
반대로, 대충 할수록 연기는 쉬워집니다. 단순히 즐길수록 연기가 가벼워집니다.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집착을 내려놓을 때 감정이 터져 나옵니다.
이걸 자주 반복하면 제2의 천성, 즉 후천적인 재능이 생겨납니다.